ㆍ관계·공동체 요소 가져… 친구가 괴롭힘 당하면 고통 느껴, 적극적 대항
경기도의 한 중학교 2학년인 수경(이하 모두 가명)이는 ‘일진’이다. 수경이는 같은 반 슬기의 필기구나 노트를 숨겨놓고는 슬기가 당황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친한 은수와 함께 깔깔댄다. 학교에서 학교폭력에 대한 경계심을 높여 요즘엔 괴롭힘의 형태가 바뀌었다. ‘단체 카톡방(온라인 모임)’에 슬기를 초대한 뒤 “돼지(슬기의 별명) 정말 못생기지 않았냐”며 욕을 한다. 은수도 맞장구를 친다. 두 사람은 슬기를 괴롭혔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카톡방에선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른다.
단체 카톡방 안에는 지원이와 현수, 은경이도 있지만 슬기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지원이는 직접 괴롭히진 않지만, 슬기가 놀림 당하는 걸 보며 함께 웃는다. 현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찌질이(슬기)와 놀면 나도 찌질해진다”며 슬기를 피한다. 수경이의 눈밖에 나면, 다음 괴롭힘의 대상이 자신이 될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은경이는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며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괴롭힘을 당하는 슬기와 함께 노는 친구는 아무도 없다. 슬기는 엄마나 선생님께 말씀드릴까도 했지만, 더 큰 따돌림을 받을까봐 조용히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교실에서 폭력은 수경(가해자)이와 슬기(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경이와 동조한 은수, 괴롭힘을 방관한 지원·현수·은경이도 이 폭력에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현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장은 “가해자와 피해자만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학교폭력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만약 방관자나 조력자 역할에 머물렀던 지원·현수·은경이가 목소리를 합쳐 “슬기 좀 그만 괴롭혀”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이들이 함께 수경이를 제재한다면, 수경이는 슬기를 괴롭히는 행동을 지속하기 힘들다. 반대로 은수·지원·현수·은경이가 수경이처럼 슬기를 함께 괴롭히게 되면, 슬기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문 소장은 “폭력을 방관하거나 소극적으로 도왔던 아이들을 ‘방어자 역할’이 되도록 만드느냐, 아니면 ‘가해자 역할’이 되도록 만드느냐가 관건”이라며 “방어자 역할을 하는 아이들이 늘어날수록 학교폭력은 사라진다”고 단언했다.
그는 “방관자에 머물렀던 아이들이 방어자로 바뀔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놀이”라고 말했다. 평소 놀이를 통해 친밀감과 공감대를 쌓아둔 아이들은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의 고통을 함께 느끼게 되고, 이는 누군가의 괴롭힘을 막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문 소장은 “학교폭력을 막기 위해 놀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놀이가 자연스럽게 학교폭력을 막는 마법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소장이 이끌고 있는 ‘평화샘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교와 교실은 놀이로 올해 새학기를 시작했다. 개학 후 첫 일주일을 ‘아이들과 친해지는 시간’으로 정해 하루에 한두 시간씩 아이들의 자유놀이, 선생님이 참여하는 대동놀이 등을 진행한 것이다. 학기 초 놀이를 통해 친구들과 평등한 관계가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안정감을 느낀 아이들은 이후 1년 동안 평화롭게 지낸다.
한국에서 ‘왕따’ 문화가 생겨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이 시기는 아이들의 놀이문화가 급격하게 사라진 때이기도 하다. 문 소장은 “아이들의 놀이문화가 사라진 것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인 까닭에 부모나 아이의 변화만을 강조하는 개인적인 접근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 ‘한 사람이라도 놀이에 끼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 힘이 약한 아이는 깍두기나 왔다리갔다리 몫으로 끼어주면 된다’는 공동체적 놀이문화를 갖고 자란 30대 중반 이후 세대가 요즘 아이들의 놀이와 관계에 대해 이해 못하는 것 역시 사회의 공동체적 요소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단지 아이들에게 놀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제공한다고 해서, 놀이문화가 생겨나고 학교폭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기대한다고 단언할 수만은 없다. 요즘 아이들은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한 놀이를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다. 유치원 때부터 ‘누가 더 센가’ ‘누가 힘이 약한가’ 등의 서열관계를 정하고, 힘이 센 아이에게는 친한 척을, 그렇지 않은 아이에게는 무시를 해 온 상황에 물들어 있다. 이 때문에 ‘따돌림 놀이’ ‘무시하기 놀이’ 등 놀이 속에서 힘이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문 소장은 “요즘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장난감 놀이 등 무엇인가를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놀이에 익숙하거나 사람과 상호작용을 한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학교와 교실에서 ‘평화를 위한 규칙’을 세워두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 소장이 정한 평화를 위한 규칙은 ‘우리는 친구들이 괴롭힘을 당할 때 도울 것이다’ ‘괴롭힘을 당하는 누군가가 홀로 있을 때 함께할 것이다’ ‘선생님은 평화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등이다.
문 소장은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보살피지 못하고 경쟁으로 떠밀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이미 권력질서와 그로 인한 폭력에 물들어 있다”며 “단순히 ‘아이들끼리 놀아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를 만들어가야 학교폭력 해결은 물론 평화적인 사회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참교육학부모회·서울 노원·도봉구청 공동기획>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