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가 밥이다] 부모가 '갑', 아이가 '을'인 놀이는 가짜 놀이

[놀이가 밥이다] 부모가 '갑', 아이가 '을'인 놀이는 가짜 놀이

선우가족놀이 0 11,518 2014.05.12 17:25
놀이란 말은 항시 ‘즐거운, 재미있는, 자발적인’이란 단어와 함께 붙어 다닌다. 즐겁고 재미있는 일들만 자발적으로 하며 지냈다면 매우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것이다. 놀이는 바로 이런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아이들이 끊임없이 놀고 또 놀아도 왜 다시 놀 기운이 생기고 놀고 싶어 하는지, 그 무한한 내적 동기와 긍정 에너지, 몰입에 대해 관심을 가져 왔다.

어린아이들은 세상에 나온 후 자신의 다섯 가지 감각을 사용해 수많은 반복 경험을 한 후에야 내가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 맛이 좋은지 아닌지 조금씩 알아 가게 된다. 아이들은 만 1년6개월이 지나면서 세상에서 본 70~100여개의 사물이나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만 2세에서 3세로 올라가면서 이러한 사물과 어휘 습득은 곱절로 늘어나고 만 4~5세가 되면 기하급수적으로 개념·기술·태도에 대한 새로운 내용이 증가한다. 그러나 감당하기 어렵지만은 않다. 이를 쉽게 해결할 방법 역시 아이들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피아제(Piaget)라는 심리학자는, 끊임없이 능력에 부치게 계속 입력된 개념들 중에서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일 경우 아이는 스스로 꺼내서 반복 사용해보고, 그것이 즐거워 다음번, 다음날에도 다시 꺼내보며 다시 확인해 가는 과정에 몰두하는데 이렇게 재미난 행위를 바로 놀이라고 했다.

이때 아이는 지루하게 그냥 반복하지 않는다. 본래의 두 사물이나 두 역할을 서로 바꾸어서 ‘마치 ~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이것을 상상놀이, 가장놀이, 역할놀이라고 한다. 내가 아빠인 것처럼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는 척하기도 하고, 작은 목욕통에 앉아서 마치 핸들이 있는 것처럼 잡고 부릉부릉 운전하는 행동을 한다. 아이는 처음 알게 된 아빠의 행동이나 자동차, 핸들, 운전하기 등의 역할을 재밌게 숙달하고 있는 중이다. 아빠나 자동차 등의 개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스스로 꺼내서 다시 해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동기와 진지함, 몰입이 값진 것이다.

이런 즐거움이 누적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키우고 싶어 하는 문제해결력과 같은 고등사고 기능이 발달하게 되고, 개념과 기술을 독특하고 색다르게 사용하면서 창의적, 전략적 특성도 함께 늘게 된다. 사회성과 안정된 정서도 향상된다.

놀이의 힘은 연령이 어릴수록 바람직한 성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놀이라는 명분 속에 새로운 공부와 개념을 넣어 주려고 할 때, 재미난 놀이 계획을 성인이 세운 후에 아이에게 따라오도록 할 때, 매력적인 ‘놀잇감’과 환경을 주며 성인이 생각하는 목표에 집중시키려 할 때, 이미 그 성인은 놀이에서 ‘갑’의 위치를 차지한다. 어른들은 ‘시간을 쪼개 아이와 놀아줬기 때문에 내 역할을 다했네’,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줬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진짜 놀이는 갑작스럽고 호들갑스럽게 아이의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현재와 상상이 마구 오가기도 하고, 실패와 성공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언제라도 현실세계로 돌아오고 조금 전에 했던 것에 대한 평가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사건의 계획과 시작, 선택과 진행, 끝남과 재시작의 모든 과정에 대한 결정을 아이가 할 때 ‘진짜 놀이’라고 한다. 놀이에서 아이는 ‘갑’이어야 한다.

<김명순 |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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