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아버지> 나는 자녀를 방임하고 있는가?
선우가족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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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2 18:06
나는 자녀를‘방임’하고 있는가?
글 선우현(명지대학교 아동심리치료학과 교수)
대전에 사는 한 어머니가 찾아온 적이 있다. 그 어머니의 딸은 상위권을 달리는 성적으로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 이제 밝은 미래를 향해 달려갈 줄 알았던 딸이 갑자기 자살충동을 일으키며 문제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고 동네 이웃들의 입방아를 피해 다른 도시로 이사해 딸과 단 둘이 고립된 채 살았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관계를 가지다보면 자연스레 보이는 관심이 부담스럽고 또 입방아에 오르내릴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것은 불편한 이웃과 멀리하고 오직 딸이 잘되기만 바라며 학교 공부에 충실하도록 열심히 가르쳤다. 하지만 명문대에 입학한 딸은 목표는 이뤘지만 그 다음을 어떻게 대처해가야 할지 몰랐다.
특히 친구들과 어울리고 함께 노는 일이 가장 어렵고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지적 수준은 높지만 또래 간의 정서적 경험이 부족했다. 흔히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부모와 함께 있다고 방임이 아닌 게 아니라 그 나이에 겪어야할 정서적 경험들과의 고립도 방임이 될 수 있다.
가까이 찾아온 정서적 방임
아이들 열 명 중에 여섯 명이 방임 상태에 놓여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요즘 들어 부모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찾아오는데 방임에 대한 문제인식보다 그저 아이가 또래 집단과 노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해 오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방임에 대한 인식을 하느냐 못하느냐는 치료에 현저한 차이를 보이게 된다.
집 밖의 환경과 또래 경험을 하지 못한 아이는 자연스럽게 정서장애가 발생되고 또래와의 상호작용을 건강하게 할 수 없게 된다. 아이들이 나이에 맞는 놀이문화와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해도 방임이 될 수 있다. 방임은 의외로 빈곤가정이나 결손 가정뿐 아니라 겉보기에 멀쩡한 가정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대도시화, 핵가족화, 가족해체 등으로 물리적, 정서적으로 고립된 부모들이 늘어나면서 우리의 가정도 더욱 고립화되기 쉬워졌다. 더구나 자녀들은 연령이 낮을수록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아 정서적 문제로 인한 사회 부적응에서부터 심하게는 발달장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증세를 보이게 된다. 방임에 있어 고립은 심각한 문제요소이다.
방임은 크게 물리적 방임과 정서적 방임으로 나뉘는데, 물리적 방임은 기본적인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경우로 부모나 보호자가 아이들을 방치해 두어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하는 것을 말한다. 물리적으로 방임된 아동들은 신체발육 및 언어발달이 지체되어 학습장애로 이어지거나 후천적인 발달장애 아동이 될 수가 있다.
정서적 방임은 아이에게 물질적 보살핌은 제공하나 아이와의 정서적 상호작용을 해주지 않거나 아이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적절한 관심과 지지 그리고 보호를 해주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된 아동들은 대개 문제행동으로 발전하여 또래 관계 및 학교적응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제 아이, 더 나아가 비행청소년으로 성장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자존감’회복이 치료 핵심
방임된 아동은 물리적 학대와 달리 밖으로 드러나는 상처가 없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 후유증이 크다. 실제로 방임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기 정신건강 및 사회적 기능에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아동기의 학대 및 방임은 성인기 알코올중독, 약물중독 그리고 범죄행동 등과 관련이 있음이 보고되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가정폭력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소아청소년 정신과나 아동상담센터 등에 내원하는 아동들 중 맞벌이가정이 아님에도 산후우울증으로 인한 후유증이나 사회적 고립 등으로 인하여 정서적 방임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대가족사회가 핵가족화 되면서, 그리고 산업화를 통해 도시화, 개인주의화 되면서 가정이 점차 고립되어가고 있다. 옛날에는 우리네 엄마들이 이집 저집 마실을 다니며 말 그대로 동네 사람과 모여 정을 나누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엄마 손 잡고 나온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동네 아이들과 어울렸다. 그러나 지금, 대규모 아파트나 빌라촌으로 바뀐 우리네 동네에서 더 이상 엄마와 아이들이 거리에 나와 정을 나누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러기에 우리의 가정은 더욱 고립화되기 쉽다. 더구나 부모가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간다면 그들의 자녀들도 자연스럽게 사회와 그리고 또래와 단절된 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나타난 증상만 치료하는 것은 문제의 근본 뿌리를 그대로 두는 것이다. 문제는 아이들의 정체성이 방임으로 인해 흔들리고 불안해졌기에 자신을 우월하거나 열등하게 생각하면서 부정적 메시지가 내재화 되게 된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자존감의 회복이 방임 치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치료시기 빠를수록 좋다
첫돌 무렵까지는 부모하고만 상호작용을 해도 정서발달에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후로는 주변 환경의 자극을 통한 다양한 상호작용의 경험이 있어야 아이들은 또래와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런 기회가 박탈된 채 집에만 있는 아이들, 특히 그 부모로부터도 적절한 정서적 상호작용을 경험하지 못한 채 방임된 아이들이라면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고 위축되어 또래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된다. 반대로 너무 산만하거나 사회적 규범을 지키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즉 불안하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된다는 것이다. 치료는 시기가 중요하다. 초등학교 3,4학년이 되어버리면 방임 아동을 치료하기는 어려워진다. 부정적 메시지가 내재화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치료기관을 빨리 찾을수록 효과가 있다.
우리 사회가 대도시화, 핵가족화, 가족해체 등으로 물리적, 정서적으로 고립된 부모들이 늘어났다. 과거엔 가족과 친인척, 이웃이 도우미 역할을 했지만 이젠 사회적, 환경적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본다. 초보엄마의 양육을 돕고, 아이들과 함께 놀이할 수 있는 정보나 환경, 부모교육 및 코칭 프로그램 등이 필요하다.
부모양육에 관한 코칭을 받은 한 어머니는 정말 쉽지만 몰라서 범했던 실수들을 인식하고, 부모와 자녀 관계뿐 아니라 가정이 변화하는 기회를 얻었다고 행복해했다.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리라. 그러나 때로 자녀를 위한다고 하는 행동들이 방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미 선진국들은 방임을 방지하기 위해 집에 아이를 혼자 두게 되면 부모가 법적 제재를 받게 제도화 했다.
그렇게까지 법적 제재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미리 알고 대처한다면 오히려 선진국들보다 모범적 사례를 보일 수 있지않을까 생각해본다.